
남이 만든 내가 먼저 돌아다녔다
《루카네의 리듬》 3/5 · 상
이안은 여전히 휴대폰 알림을 꺼둔 채였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읽지 않은 숫자가 계속 늘어났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리오는 전보다 멀리 앉았고, 복도를 지나가면 가끔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그것이 정말 자기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카페테리아에 들어서자 맞은편 테이블에 있던 아이 하나가 이안을 보고 웃었다.
“야, 걔 왔어.”
옆에 있던 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조심해. 이제 유명인이잖아.”
몇 명이 웃었다. 이안은 쟁반을 들고 그대로 지나갔다.
맞은편에 리오가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리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학교에서 가장 힘든 것은 누가 뭐라고 하는 순간보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루카네로 돌아왔을 때 오후 영업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루카는 주방에서 바질 잎을 다듬고 있었다. 이안은 가방을 카운터 밑에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학교 갔다 왔냐.”
“네.”
이안은 병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아빠.”
“왜.”
“친구가 갑자기 내가 잘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해요?”
루카의 손이 바질 줄기 하나를 떼어냈다.
“누가.”
“그냥요.”
“그냥이면 됐네.”
이안이 인상을 썼다.
“뭐가 돼요.”
루카는 바질을 작은 통에 담았다.
“제가 걔한테 뭘 한 것도 없거든요.”
대답은 없었다.
“근데 요즘은 제가 뭘 하면 다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루카는 통 뚜껑을 닫았다.
“아빠는 이런 얘기 들으면 해줄 말 없어요?”
“있어야 되냐?”
이안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됐어요.”
루카는 더 묻지 않았다. 잠시 뒤 냉장고 문을 열어 양파 상자를 꺼냈다.
“이거 먼저 해.”
“몇 개요?”
“여섯.”
이안은 도마 앞에 섰다. 평소 쓰던 칼을 찾으려고 칼꽂이에 손을 뻗었다.
없었다.
“제 칼 어디 있어요?”
“갈려고 빼놨어.”
“그럼 뭐 써요?”
루카가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 몇 자루의 칼 사이에서 하나를 꺼냈다. 요즘 루카가 쓰는 칼보다 조금 작았다. 손잡이는 오래 닳아 군데군데 색이 흐려져 있었다.
루카가 칼등을 잡아 내밀었다.
“이거 써.”
이안이 받았다.
“이게 뭐예요?”
“칼.”
“그건 알아요.”
손에 들어보니 무게가 평소와 달랐다.
“무거운데요.”
“처음 쓸 땐 그럴 거다.”
이안이 칼을 다시 보았다.
“아빠 거예요?”
“처음 일 배울 때 쓰던 거.”
“그걸 왜 저한테 줘요?”
루카는 서랍을 닫았다.
“네 손에 익혀.”
“오늘만요?”
루카는 이미 냉장고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칼이 싫으면 네 거 갈 때까지 기다리든가.”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양파 하나를 도마에 올렸다. 반으로 갈랐다.
탁.
느낌부터 달랐다. 손잡이가 두꺼웠고 무게중심도 익숙한 곳에 있지 않았다.
다시 썰었다.
탁.
이번에는 손목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이거 불편한데요.”
루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익히라고.”
이안은 다시 칼을 들었다.
탁.
탁.
탁.
옆에서는 루카의 칼질이 시작됐다.
탁탁.
탁.
이안도 무심코 그 속도에 맞추려 했다. 칼이 따라가지 못했다. 한 번은 너무 빨랐고, 다음에는 늦었다.
이안은 손을 멈췄다. 양파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루카의 박자에 자기 손을 맞추지 않았다. 손가락의 위치를 보고, 칼날이 내려오는 각도를 봤다.
천천히 내렸다.
탁.
한 번 더.
탁.
조금 나았다.
이안은 계속 썰었다. 루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학교는 비슷했다. 리오는 여전히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복도에서 한 학생이 이안을 불렀다.
“야, 너 요즘 영상 안 올려?”
“왜?”
“그냥. 사람들이 기다리던데.”
“모르겠어.”
“이제 유명해져서 바쁜가?”
옆에 있던 아이가 웃었다. 이안은 그냥 지나갔다.
파스타를 만든 애.
SNS에서 영상이 돌던 애.
갑자기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한 애.
학교에는 그런 이안이 먼저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이안은 평소보다 일찍 학교를 나왔다. 루카네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카는 식재료를 사러 나갔고 어머니도 볼일이 있다고 했다.
주방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이안은 카운터에 잠깐 앉아 있었다.
조용했다.
휴대폰을 꺼냈다. 알림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화면을 켰다가 다시 닫았다.
그러다 주방 구석에 세워둔 삼각대를 봤다.
이안은 그것을 가져와 조리대 앞에 세웠다. 휴대폰을 끼웠다. 화면 안에는 도마와 손이 들어왔다.
늘 찍던 구도였다.
아버지에게 받은 칼을 꺼냈다. 양파를 올렸다. 촬영 버튼을 눌렀다.
탁.
탁.
어제보다는 소리가 조금 나았다.
팬을 달궜다. 마늘을 넣었다. 올리브오일 위에서 마늘 가장자리가 노랗게 변했다. 면을 넣고 팬을 흔들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카메라가 켜져 있다고 생각하자 손이 다시 어색해졌다.
이안은 녹화를 멈췄다. 방금 찍은 영상을 재생했다.
손.
칼.
도마.
팬.
접시.
끝.
다시 돌려봤다.
똑같았다.
화면 안에 있는 것은 자신이 한 일이었지만 자신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