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 인문 에세이/철학 에세이

(33)
신윤주의 가정음악에서 들은 〈Both Sides, Now〉|작가는 멀리 있지 않다 음악 한 곡이 데려간 10월 아침10월 아침, 라디오에서 트럼펫 선율이 흘러나왔다. KBS Classic FM 『신윤주의 가정음악』을 듣고 있던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호칸 하르덴베리에르(Håkan Hardenberger)가 연주하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Both Sides, Now〉였다.길고 아련한 트럼펫의 호흡이 서늘해진 아침 공기 위로 천천히 번지고, 그 뒤를 받치는 현악의 잔잔한 울림이 하루를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잠시 그대로 앉아 이 음악을 더 듣고 싶어졌다. 그때 오래된 유럽의 어느 카페 거리가 떠올랐다. 파리일 수도 있고 빈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보았던 어느 한 장소도 아니다. 초가을 아침, 길가에 내놓은 작은 의자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K.216|오늘 아침 내 트럭에 들어온 음악― 삶이 어려워졌다고 오늘의 기쁨까지 미뤄야 할까 모차르트가 오늘 아침 내 트럭에 들어왔다― 삶이 어려워졌다고 오늘의 기쁨까지 미뤄야 할까일을 하다가 우연히 음악 하나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곡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이상하게 좋았다. 휴대전화로 소리를 남겼고, 나중에 찾아보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 K.216」이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악보를 펼쳐놓고 화성을 분석할 수도 없다. 매일 물건을 싣고 내리고, 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택배 기사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부터 그 곡을 다시 찾아 듣게 되었다. 들을수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사회를 참 잘 본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사회학의 사회가 아니다. 결혼식이나 연회장..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 Part 4 | 보조금보다 일이 더 중요한 이유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은 노동과 존엄, 공동체,그리고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을 관찰하는 Human Coordinates 시리즈입니다.이 글은 깊은만족 Savor Balance가 기록하는 Human Coordinates 아카이브의 일부입니다. 나는 그분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 장면은 내게 질문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질문을 따라온 또 하나의 기록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왜 일을 할까? 돈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한다.집세를 내야 한다.전기요금을 내야 한다.병원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 살다 보면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폐지를 모으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공공근로를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택배 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 Part 3 | 외국인 노동자는 문제가 아니라 질문이다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은 노동과 존엄,공동체와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을 관찰하는 Human Coordinates 시리즈입니다.이 글은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가 기록하는 인간 좌표 아카이브의 일부입니다.나는 그분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게 질문을 남겼다.이 글은 그 질문이 조금 더 커진 기록이다. 질문은 이제 사람을 넘어공동체를 향하기 시작했다.나는 택배 일을 하면서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공장 앞에서도 본다.건설 현장에서도 본다.식당에서도 본다.물류센터에서도 본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외국인 노동자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그들은 우리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한 가지 생각을 하곤 한다. 왜 사람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 할까? 아..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 Part 2 |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은 왜 항상 경쟁의 대상이 되는가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은 노동과 존엄, 공동체, 그리고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을 관찰하는 Human Coordinates 시리즈입니다.이 글은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가 기록하는 인간 좌표 아카이브의 일부입니다.━━━━━━━━━━━━나는 그분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게 질문을 남겼다. 이 글은 그 질문이 처음으로 커지기 시작한 기록이다. 어느 날 문득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지를 보고 있었는데돈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사람을 생각했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가장 약한 사람을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아마도 내가 떠올린 것은폐지 자체가 아니라 그 폐지가 누군가에게 갖는 의미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폐지는 쓰레기..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 Part 1 | 정년퇴직한 아저씨가 파지를 줍기 전에 해야 할 질문 파지 한 묶음이 던진 질문은 노동과 존엄, 공동체, 그리고 가장 약한 사람의 몫을 관찰하는 Human Coordinates 시리즈입니다.이 글은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가 기록하는 인간 좌표 아카이브의 일부입니다. 나는 그분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장면은 내게 질문을 남겼다.이 글은 그 질문이 처음 시작된 기록이다.어느 날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도안동이었을 것이다.혹은 월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처럼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한 대의 1톤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새 차량이었다. 차량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적재함도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노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급해 보이지 않았다.무언가를 다투는 모..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되돌아오는 비용을 줄이는 선택의 기준 우리는 얼마나 자주, 방향보다 속도를 먼저 선택하는가. 나는 한동안 빠르게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결정을 미루지 않고,망설이지 않고,일단 움직이고 보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적어도 멈춰 서 있는 나보다덜 불안해 보였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나는 이상한 계산 하나를 반복해서 하게 되었다. 빠르게 간 사람들은왜 그렇게 자주 되돌아오는가. 되돌아오는 데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나타났거나,혹은 애초에 목적지가 없었다는 사실을뒤늦게 깨달았거나.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되돌아오기까지 치러야 했던 비용이 아닐까.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말하지만,실제로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실패 그 자체보다 방향을 확인하지..
집안일은 혼자 버틸 수 없다 3편 | 방향성을 말한다 고립을 끝내는 길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함께 사는 리듬을 복원하는 ‘작은 부족의 철학’에 있다. 3주의 고립 끝에 얻은 방향성의 기록.📘 시리즈 인트로《집안일은 혼자 버틸 수 없다 – 고립된 가족에서 작은 부족으로》 이 시리즈는1편에서 현대 가족을 고립시키는 시스템을 해부하고,2편에서 그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실제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기록했다.이번 3편은 정답을 단정하지 않으면서도,각자가 자신만의 “작은 부족”을 세워갈 수 있도록철학적 방향성과 현실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3주 동안 집안을 지키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해결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우리가 다시 함께 사는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부제: 고립된 역할에서, 함께 사는 리듬으로🟦 1. 3주의 고립이 나에게 가르쳐준 사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