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소공녀>에서 시작된 질문
영화 <소공녀>를 보면서 이상하게 오래 남은 장면이 있었다. 거창한 장면은 아니었다. 미소는 하루 동안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하고, 자신의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일을 마친 뒤 자신이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줄거리와는 조금 다른 것이 궁금해졌다.
저 사람은 저걸 마시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한 모금은 오늘 하루의 무엇을 조금 견디게 해주었을까.
술이 맛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일을 끝냈다는 작은 보상이었을 수도 있고, 오래된 습관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알 수 없다. 영화 역시 미소가 잔을 들 때마다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의 한 잔이었다면 아마 그렇게 오래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소의 생활은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위스키를 마신다.
영화가 조금 더 진행되면서 그 궁금증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집세가 오른다. 살아가는 데 드는 돈도 늘어난다. 돈이 부족해지면 우리는 보통 무엇부터 줄일까. 술을 줄일 수도 있고 담배를 끊을 수도 있다. 외식을 줄이거나 취미에 쓰는 돈을 아낄 수도 있다.
나라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먹고 자는 곳은 필요하지만 술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그래서 미소의 선택은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전고운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소공녀>에서 이솜이 연기한 미소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영화의 공식 소개에서도 미소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모금,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설명된다. 물가와 집세가 오르는 상황에서 미소가 포기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이 아니라 집이다.
경제적인 계산으로만 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순서다.
생활이 그렇게 어렵다면 술이나 담배부터 줄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이 반론을 쉽게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자연스러운 생각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실 돈으로 생활비를 보태고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거처를 지키는 편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상식과 다른 선택을 우리 앞에 놓는다.
그래서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왜 위스키를 마셨을까가 아니었다.
왜 이것만은 먼저 포기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는가뿐 아니라 무엇을 먼저 포기하지 못하는가에서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미소의 선택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집을 포기한 그의 선택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술을 포기하지 않는 일을 아름답게 만들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 앞에서 한 번쯤 그 사람의 자리로 조금 가까이 가보고 싶어졌다.
왜 그 사람에게는 내가 쉽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전고운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감독은 높은 월세 때문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줄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 돈을 벌기 위해 더 바빠지고, 그러면서 좋아하던 것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현실을 보았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집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미소를 설명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 미소가 조금 덜 이상하게 보였다. 여전히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미소가 단순히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생활이 어려워졌을 때 무엇부터 줄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순서가 나와 달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또 하나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하필 위스키였을까.
전고운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소가 즐겨 마시는 위스키가 글렌피딕이라고 직접 밝혔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싱글몰트이고 대중적으로 알려진 몰트 위스키라는 취지의 설명도 했다.
감독의 해당 인터뷰에서 연산까지 직접 특정하지는 않지만, 여러 후속 자료에서는 영화 속 미소가 마시는 술을 글렌피딕 1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글렌피딕 15년이라는 술을 조금 찾아보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영화 속 인물이 반복해서 마시는 술이니 어떤 술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술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읽다가 뜻밖의 지점에서 오래 머물렀다.
글렌피딕 15년은 여러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하나의 Solera Vat에서 조화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글렌피딕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 Solera Vat은 1998년 처음 채워진 뒤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채 운영되어 왔다.
일부가 남고 새로운 위스키가 들어온다. 다시 일부가 남고 또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고 이전의 시간이 매번 완전히 사라지는 방식은 아닌 것이다.
오늘의 Solera Vat은 1998년 처음 채워진 뒤 완전히 비워진 적 없이 이어져 왔다.
글렌피딕은 이런 방식과 자신의 역사에 ‘pioneering spirit’, 개척정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글렌피딕이 자신의 제품과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내 생각이다.
전고운 감독이 미소의 삶과 글렌피딕의 개척정신을 연결하기 위해 이 술을 선택했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확인된 감독의 설명은 훨씬 단순하다. 글렌피딕 역시 힘든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제조 방식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술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알고 난 뒤 영화 속 미소의 한 잔을 전과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술.
매번 모든 것을 없애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시간을 남긴 채 새로운 시간을 받아들이며 이어져온 술.
그리고 그날도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하며 하루를 보낸 뒤 작은 잔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
두 장면을 함께 놓고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힘든 길을 한 번도 지나보지 않은 사람이 내게 다가와 “힘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길을 오래 걸어본 사람이 잠시 옆에 앉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조금 다르게 들린다.
말 자체는 별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두 번째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과 비슷한 길을 그 사람도 지나왔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같은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릴 때가 있다.
위로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지친 하루를 없애주지도 않고 내일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그런 사람 곁에서 조금 더 견딜 수 있다고 느낀다.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역시 한때 그 길 위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글렌피딕 15가 지나온 시간을 알고 난 뒤 미소의 잔을 그런 장면처럼 상상해보게 됐다.
오래 견딘 존재가 아직 걷고 있는 존재에게 건네는 위로.
“나는 다 지나왔으니 너도 성공할 수 있어.”
그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훨씬 작은 말에 가까웠다.
“나도 오래 걸렸다.”
어쩌면 그 정도.
아직 가는 중인 한 사람 곁에, 오래 가는 중인 무엇인가가 잠시 머물러주는 것.
내게는 미소가 마시던 한 잔이 어느 순간 그렇게 보였다.
물론 미소가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글렌피딕의 Solera 방식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한 잔에서 개척이나 축적 같은 말을 떠올렸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이것은 미소의 마음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한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 한 사람이 마시던 술을 찾아보다가 다시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생긴 생각이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게 됐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생활이 저렇게 어려운데 왜 위스키를 마실까.
조금 뒤에는 궁금했다.
왜 저것부터 줄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은 그 선택을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그 한 잔이 미소에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좋아하는 술이었을 수도 있다. 하루 끝에 기다리는 작은 즐거움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미처 알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중 하나를 정답으로 고르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쉽게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눈앞의 가격과 필요만으로 그 사람의 선택을 모두 설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만났을 때 곧바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기 전에 왜 저 사람에게는 저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하고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
<소공녀>를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그 정도였다.
나는 지금도 미소처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마 나는 집을 먼저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와 지금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생겼다.
그때는 묻고 싶었다.
“집도 없는데 왜 위스키를 마셔?”
이제는 조금 다르게 묻게 된다.
내 눈에는 한 잔의 위스키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미소는 왜 그렇게 쉽게 놓지 못했을까.
그 질문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지막에 하나가 남았다.
미소가 정말 지키고 있던 것은 위스키였을까.
참고자료 및 사실 확인 출처
이 글의 영화 설정, 전고운 감독의 발언, Glenfiddich 15의 제조 방식은 아래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했습니다. 영화와 제조사가 밝힌 사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해석은 구분하여 사용했습니다.
- 한국영상자료원, 「소공녀」 기증된 영화유산 및 전고운 감독 인터뷰
영화의 기본 설정과 전고운 감독의 Glenfiddich 관련 발언을 확인한 핵심 자료.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한기봉, 「스트리밍 라이프」, 2019.11.05.
영화 속 미소의 위스키를 Glenfiddich 15년산으로 기록한 후속 자료. - 머니투데이, 「“소주로 달리기 싫어”…MZ는 위스키 알코올에 취한 게 아니다」, 2023.03.11.
Glenfiddich 15년산이라는 연산을 확인하기 위한 보조 자료. - Glenfiddich, “15 Year Old — Our Solera Fifteen”
Solera Vat의 운영 방식, 1998년 이후의 연속성, pioneering spirit 표현을 확인한 공식 자료. - Glenfiddich, “15 Years Old — Online Mentoring”
제5대 Malt Master David Stewart와 Glenfiddich 15의 Solera 방식에 관한 공식 자료.
※ 영화 속 위스키가 Glenfiddich라는 점은 전고운 감독의 인터뷰에서 직접 확인되지만, 15년산이라는 연산은 감독이 직접 특정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후속 자료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 본문에서 Glenfiddich의 시간과 Solera 방식을 미소의 삶과 연결해 바라본 부분, 특히 **“오래 견딘 존재가 아직 걷고 있는 존재에게 건네는 위로”**라는 표현은 전고운 감독이나 Glenfiddich의 공식 설명이 아니라 이 글의 작가적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