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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인문 에세이/철학 에세이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K.216|오늘 아침 내 트럭에 들어온 음악― 삶이 어려워졌다고 오늘의 기쁨까지 미뤄야 할까

Vertical illustration for an essay about Mozart’s Violin Concerto No. 3, K.216, showing Mozart playing violin above a lively Salzburg street while a delivery driver listens to the concerto inside a truck at sunrise, symbolizing how music can bring joy and warmth into everyday life.

모차르트가 오늘 아침 내 트럭에 들어왔다

― 삶이 어려워졌다고 오늘의 기쁨까지 미뤄야 할까

일을 하다가 우연히 음악 하나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곡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이상하게 좋았다. 휴대전화로 소리를 남겼고, 나중에 찾아보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 K.216」이었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악보를 펼쳐놓고 화성을 분석할 수도 없다. 매일 물건을 싣고 내리고, 차를 몰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택배 기사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부터 그 곡을 다시 찾아 듣게 되었다.

 

들을수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사회를 참 잘 본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사회학의 사회가 아니다. 결혼식이나 연회장에서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피는 사회자다. 마치 능숙한 진행자가 좌중을 바라보며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조금 지나면,

 

“이제 잠시 숨도 돌리시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 너무 앉아만 있지 말고 한번 나오시죠.”

 

나는 이 음악을 그렇게 들었다.

 

나중에 이 곡에 관한 해설들을 들여다보았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움직이고, 악장마다 표정이 달라지며, 특히 마지막 악장이 춤곡처럼 움직이면서 예상 밖의 성격 변화를 보여준다는 설명이 있었다. 실제로 모차르테움의 최근 프로그램 노트도 K.216을 우아하고 재치 있으며 변화무쌍한 작품으로 설명하고, 마지막 론도에서 프랑스풍 가보트와 보다 소박한 선율이 갑자기 등장한다고 짚는다. 모차르트 재단

 

내가 느낀 ‘유능한 사회자’라는 말이 음악학적 분석과 같은 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악보도 읽지 못하는 한 사람이 음악에서 먼저 느낀 움직임과, 전문가가 작품의 구조에서 발견하는 움직임 사이에 전혀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나는 좋았다.

 

어쩌면 좋은 예술이란 그런 것 아닐까.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사람과 최고의 교육을 받은 음악학자가 같은 곡 앞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도 어느 지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어린아이는 그냥 몸을 흔들고, 음악가는 그것을 리듬과 구조의 언어로 설명하고, 나는 택배차 안에서 “야, 이 음악 참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예술이 전문가에게만 자신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너무 쓸쓸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토록 밝고 움직임이 많은 음악이 만들어진 해를 찾아보니 1775년이었다. 모차르테움의 Köchel Catalogue에는 K.216이 잘츠부르크에서 1775년 9월 12일 완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차르트는 열아홉 살이었다. DE

 

그리고 1775년의 세계는 이 음악처럼 가볍지만은 않았다.

 

유럽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졌던 7년 전쟁이 끝난 지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에 시작된 이 전쟁은 유럽뿐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인도 등 여러 지역을 연결한 광범위한 전쟁이었다. 전쟁은 막대한 인명과 재정을 소모했고, 유럽의 세력 질서에도 큰 변화를 남겼다. 국립군사박물관

 

1772년에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를 나누어 갖는 제1차 폴란드 분할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K.216이 쓰인 바로 그해 1775년 4월, 대서양 건너 북아메리카에서는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가 충돌했다. 훗날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질 첫 무력 충돌이었다. German History in Documents and Images

 

물론 당시 유럽 사람 모두가 매일 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잘츠부르크의 한 음악가가 북아메리카의 전쟁을 의식하며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세계 역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세상이 평온해진 뒤에야 음악을 만들고 즐길 수 있었던 세계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모차르트 개인의 자리도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자리와는 달랐다. 1772년부터 그는 잘츠부르크 궁정의 유급 콘서트마스터로 일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차르트를 서양 음악사의 중심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하지만, 1775년의 열아홉 살 모차르트는 궁정의 위계와 의무 안에 놓여 일하던 젊은 음악가였다. Salzburg

 

그런 세계에서 이런 음악이 나왔다.

 

그것이 나는 이상했다.

 

이렇게 밝지 않은 세계에서 왜 이렇게 밝은 음악이 나왔을까.

 

250년을 건너 오늘 아침으로 돌아와 본다.

 

우리의 세계도 모든 일이 정리된 뒤에야 살아도 되는 세계는 아니다. 눈을 뜨면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상의 소식을 확인하고 나면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경우보다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시작하면 일이 걱정이고, 일이 끝나면 돈이 걱정이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걱정하고, 이번 달을 살면서 다음 달을 걱정한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도 다음 날 할 일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녀 문제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 문제가 있다. 물가는 오르고, 노후는 불안하고, 회사는 언제까지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사회 전체로 넓혀보면 세대와 계층 사이의 불신이 있고, 국가 사이의 긴장이 있고, 무엇이 맞는지를 두고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갈등도 있다.

 

우리는 해결해야 할 일이 참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과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거의 같은 말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웃으면 철이 없는 사람 같고, 미래가 불안한데 즐거워하면 현실을 모르는 사람 같고, 큰 걱정을 앞에 두고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무언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그럴 때야?”

 

이 말은 참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 정말 ‘그럴 때’가 오기는 할까.

 

빚을 다 갚으면.
아이들이 다 크면.
집을 마련하면.
은퇴 준비가 끝나면.
몸이 건강해지면.
세상이 안정되면.

 

그때 기뻐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평생 기쁨을 예약만 하다가 생을 마칠 수도 있다.

 

음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오늘날 클래식 공연장의 정숙한 감상 문화에는 분명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이 한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조용히 듣고, 연주자를 존중하고, 섬세한 음을 함께 듣는다.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음악이 놓인 자리가 달라졌다는 사실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다.

 

오늘날 어떤 클래식 음악은 공연장으로 찾아가 조용히 앉아 집중해서 만나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서양 예술음악 역시 언제나 그 자리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궁정과 교회, 가정과 사교의 자리, 축하와 오락의 시간 속에서도 음악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나는 사물을 옳고 그름부터 판단하기보다 가끔 그것이 놓여 있던 자리를 먼저 보려고 한다.

 

음악의 가치가 변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위치가 변한 것이다.

 

그리고 위치가 바뀌면 관계도 달라진다.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한다면서 평생 멀리 떨어져 감탄만 하는 것과 그 사람과 한집에서 밥을 먹고, 웃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화해하며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전자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아름다움과 함께 사는 것이다.

 

혹시 우리는 음악뿐 아니라 삶마저 너무 멀리서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1775년으로 돌아간다.

 

모차르트는 7년 전쟁의 상흔을 없앨 수 없었다. 유럽의 권력질서를 바꿀 수도 없었고, 신분제 사회를 해체할 수도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음악 안에서는 다른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K.216을 다시 듣는다.

 

첫 악장은 문을 열고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듯 움직인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한쪽이 말하면 다른 쪽이 받고, 다시 독주 바이올린이 앞으로 나온다.

 

두 번째 악장에서는 공간의 온도가 달라진다. 방금까지 움직이던 사람들이 잠시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것 같은 호흡이 찾아온다.

 

그리고 세 번째 악장. 론도가 시작되면 다시 사람이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악장은 한 가지 표정으로 끝까지 달려가지 않는다. 음악이 방향을 바꾸고, 성격이 달라지고, 뜻밖의 선율이 끼어든다. 후반에는 프랑스풍 가보트에 이어 보다 소박한 선율이 나타나는데, 연구를 통해 이 선율이 당시 유행하던 노래인 ‘The Strassburger’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어 왔다. 모차르트 재단

 

여기서부터는 역사적 사실과 내가 듣는 이야기를 분리해야 한다.

 

모차르트가 그 선율을 넣으며 “귀족과 농민은 하나다”라고 선언하려 했다는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모차르트의 정치적 의도로 대신 말해서는 안 된다.

 

다만 오늘 이 음악을 듣는 내 귀에는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보인다.

 

서로 다른 삶의 자리가 한 곡 안에 들어와 갑자기 같은 공간을 쓰는 것 같다.

 

궁정과 거리.
우아함과 익살.
앉아 있는 사람과 춤추는 사람.

 

서로 다른 표정들이 한 음악 안에서 싸우지 않고 함께 논다.

 

그 장면을 듣고 있자니 오래전 우리 장터의 풍경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구경한다. 광대가 놀고 음악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보고 있다. 그런데 장단이 조금씩 올라가면 한 사람의 어깨가 움직이고, 옆 사람의 무릎도 움직인다.

 

처음에는 앉아서 들썩거리던 사람이 결국 일어난다. 판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또 한 사람이 나온다. 조금 전까지 구경하던 사람이 어느새 공연의 일부가 된다.

 

나는 음악에 이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을 참여자로 바꾸는 힘.

 

음악의 사회성이라고 해도 좋고, 조금 다르게 말하면 음악의 ‘사교적 사회성’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사회자가 사람들에게 일일이 명령하지 않아도 좋은 사회자는 자리의 기분을 바꾼다. 음악도 때때로 그렇다. “춤춰.”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발이 먼저 움직이고, “웃어.”라고 명령하지 않는데도 얼굴이 풀어진다. “저 사람과 함께 있어.”라고 설득하지 않는데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잠시 같은 리듬 안에 들어간다.

 

나는 그래서 처음 이 곡을 듣고 사회자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모차르트의 음악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너무 오래 앉아 있었잖아.”
“이리 나와.”
“지금은 조금 즐겨도 돼.”

 

미국의 교육자 레오 버스카글리아(Leo F. Buscaglia)의 강연집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Living, Loving & Learning)』에는 그의 가족과 삶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Choose Life」에서 버스카글리아는 어린 시절의 한 저녁을 회상한다. 아버지의 사업 동료가 가족의 돈을 가지고 사라졌고, 아버지는 다음 끼니조차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절망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가족 앞에 어머니는 세례식이나 결혼식 때 차릴 법한 푸짐한 음식을 내놓았다. 가진 것을 아껴두는 대신 그날의 식탁에 써버린 것이다. 버스카글리아는 그 저녁을 오랫동안 ‘Mama’s Misery Dinner’로 기억했다. Scribd

 

생각해보면 이상한 행동이다.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집이라면 가진 것을 더 움켜쥐는 쪽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머니는 오히려 그날 가족을 식탁으로 불러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돈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다. 다음 날이면 해결해야 할 현실은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그 저녁만큼은 가난과 불안이 가족 전체를 차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미래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현실을 외면한 것도 아니다.

 

어려움에게 오늘 하루 전체를 넘겨주지 않은 것이다.

 

같은 책의 「The Art of Being Fully Human」에는 버스카글리아 자신의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가을, 그는 위스콘신에서 약 천 명의 수녀들이 모인 행사에서 강연했다. 아름다운 가을 낙엽을 보고 감탄하자 사람들은 큰 봉지에 낙엽을 담아주었고, 거대한 호박과 빵 두 덩이, 위스콘신 치즈까지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시카고에서 출발하는 늦은 야간 비행기에 올랐다. Scribd

 

승객이라고는 거의 자신뿐이고 승무원들만 남아 있던 조용한 비행기였다. 기내의 불이 어두워지자 버스카글리아는 가운데 좌석의 팔걸이를 올리고 낙엽을 펼쳤다. 그 위에 커다란 호박을 놓고, 양옆에는 빵을 두고, 치즈도 늘어놓았다. 그리고 승무원을 불렀다.

 

피곤해 보이던 승무원이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이 달라졌다. 다른 승무원들도 모였고, 그들은 캘리포니아 와인까지 가져왔다. 평범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야간 비행이 낙엽과 호박, 빵과 치즈, 와인을 나누는 작은 축제가 되었다. 버스카글리아는 이 일을 평범한 순간을 작은 마법으로 바꾼 경험으로 기억한다. Scribd

 

나는 이 장면을 생각하다 모차르트를 다시 떠올렸다.

 

한 사람은 음표를 놓았다.
한 사람은 식탁을 차렸다.
한 사람은 낙엽과 호박과 빵과 치즈를 비행기 좌석 위에 펼쳐놓았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세 가지가 이상하게 같은 일을 한다.

 

공간의 온도를 바꾼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해결책의 결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문제가 사라진 뒤에 도착하는 최종 상태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사이에 사람이 잠시 만들어놓을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일 수도 있다.

 

내일의 문제를 외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걱정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내일도 해결해야 하고, 싸워야 할 문제는 싸워야 하며, 준비해야 할 것은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오늘의 웃음과 식사와 음악과 사랑까지 그 문제에게 담보로 넘겨줄 필요가 있을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다고 전쟁이 멈추지는 않는다. 한 끼의 잔치 음식으로 가난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 좌석에 낙엽과 음식을 펼쳐놓는다고 인생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인간에게는 그것만큼 중요한 다른 능력도 있는지 모른다.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순간에도 현실이 나의 모든 것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

 

그리고 그 작은 기쁨 안으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능력.

 

기쁨은 혼자 느끼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음악이 들리면 옆 사람의 어깨도 움직이고, 음식을 차리면 사람을 식탁으로 부르게 된다. 낙엽과 빵을 펼쳐놓으면 피곤하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함께 앉는다.

 

좋은 기쁨에는 이상하게 문이 있다.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이다.

 

오늘도 아침이 오면 배송차에 오른다. 물건은 그대로 많을 것이다. 밀리는 길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달에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내일 걱정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해결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대부분의 아침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 몇 가지와 함께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차 안에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250년 전 잘츠부르크에서 쓰인 음악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아침을 이렇게 조금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바이올린이 움직인다. 오케스트라가 받아준다. 다시 바이올린이 앞으로 나온다.

 

나는 운전대를 잡는다.

 

세상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아침의 온도가 조금 달라져 있다.

 

오늘 내가 들어가는 공간에서는 무엇을 놓을 수 있을까.

 

음악일 수도 있고,
따뜻한 밥 한 끼일 수도 있고,
우스운 이야기 하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먼저 건네는 인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낙엽 한 장이면 충분한 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내가 들어가는 공간의 온도를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


참고문헌·확인 자료

  1. Internationale Stiftung Mozarteum Salzburg, “KV 216 – Concerto in G.” Köchel Catalogue.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G장조, K.216」의 작품 번호, 작곡 장소와 완성일(잘츠부르크, 1775년 9월 12일) 확인 자료. Köchel Catalogue: KV 216
  2. Stiftung Mozarteum Salzburg, Mozart Week 2026: Final Concert programme booklet.
    K.216의 음악적 성격, 마지막 론도의 프랑스풍 가보트와 ‘The Strassburger’ 선율, 목관의 역할 등에 관한 해설 자료. Mozarteum Final Concert programme
  3. Brown, Caitlin E. “Mozart: Concerto No. 3.”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2016.
    K.216의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관계, 2악장의 음향적 성격, 춤곡적인 마지막 악장에 관한 프로그램 노트. Indianapolis Symphony Orchestra program note
  4. Salzburg.info, “Wolfgang Amadeus Mozart: Brief Biography.”
    모차르트가 1772년부터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유급 콘서트마스터로 근무했다는 생애 자료. Mozart: Salzburg Years
  5. National Army Museum, “Seven Years War.”
    1756~1763년 7년 전쟁의 유럽·북아메리카·인도 등 국제적 범위와 역사적 배경 확인 자료. Seven Years War
  6. German History in Documents and Images, “The Partitions of Poland, 1772–1795.”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 의한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과 당시 유럽 세력 균형에 관한 자료. The Partitions of Poland, 1772–1795
  7. Library of Congress, “The American Revolution.”
    1775년 4월 19일 렉싱턴·콩코드 전투와 미국 독립전쟁 초기 과정 확인 자료. The American Revolution
  8. Buscaglia, Leo F. Living, Loving & Learning. Rinehart and Winston, 1982.
    강연 「The Art of Being Fully Human」의 위스콘신 낙엽·호박·빵·치즈와 야간 비행 일화, 「Choose Life」의 가족 경제위기와 ‘Mama’s Misery Dinner’ 일화의 원전. ISBN 978-0-03-061552-8. Google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