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네의 리듬》 · 시리즈 허브 · 5편 완결
아버지와 아들이 요리로 서로를 기억하는 성장소설
사람은 누구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얻는가?
미국 뉴저지 외곽의 작은 상업지구. 세탁소와 약국 사이에는 오래된 파스타 가게 LUCANE이 있다. 몇 해 동안 비와 눈을 맞은 간판 한쪽의 페인트는 벗겨졌지만, 아버지 루카는 여전히 같은 주방에서 자기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열일곱 살 이안은 그 가게를 바꾸고 싶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싶고, 카메라로 보여주고 싶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을 더 이상 ‘루카의 아들’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꾸려는 아들과 지키려는 아버지가 같은 주방에 서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하나씩 생겨난다.
파스타와 칼, 카메라와 SNS, 친구의 시선,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리듬. 《루카네의 리듬》은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찾아가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설 수 있는지를 따라가는 5편의 성장소설이다.
사람과 장소
이안
열일곱 살. 새로운 음식과 영상에 익숙하다. 아버지의 가게를 바꾸고 싶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변화뿐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루카
오랫동안 자기 방식으로 파스타를 만들어온 요리사. 설명보다 행동이 먼저이고, 마음도 거의 말하지 않는다.
리오
이안의 친구. 이안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의 거리도 달라진다. 가까운 사람이기에 가장 먼저 알아보고, 때로는 가장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인물이다.
LUCANE
뉴저지 외곽의 작은 파스타 가게. 루카가 오랫동안 지켜온 공간이자, 이안이 자기 이름을 찾기 시작하는 자리다.
읽는 순서
《루카네의 리듬》은 5편으로 완결된 하나의 중편소설이다. 스마트폰에서 한 회차가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3·4·5편은 상·하로 나누어 발행했다.
따라서 작품은 5편, 실제 Tistory 게시물은 8개다.
1/5 · 충돌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틀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게를 바꾸고 싶은 이안과 자기 방식을 지키는 루카. 트러플 오일 한 병과 한 접시의 파스타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첫 충돌이 시작된다.
아버지의 파스타 가게를 바꾸고 싶었다 | 루카네의 리듬 1/5 · 아버지와 아들의 성장소설
2/5 · 시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면 나는 더 선명해지는가, 더 흔들리는가?
자신이 만든 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안의 이름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인정받는 기쁨과 함께 예상하지 못했던 시선도 따라온다.
내가 잘되자 친구의 표정이 달라졌다 | 루카네의 리듬 2/5 · 우정과 질투 사이의 성장소설
3/5 · 정체성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사람인가, 스스로 만드는 사람인가?
사람들은 이안을 찍고, 말하고, 해석한다. 어느 순간 이안보다 ‘남이 만든 이안’이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제 카메라는 이전과 다른 질문을 향한다.
상|남이 만든 내가 먼저 돌아다녔다 | 루카네의 리듬 3/5 · 상 · SNS와 정체성의 성장소설
하|남이 만든 내가 아니라, 나를 찍기 시작했다 | 루카네의 리듬 3/5 · 하 · 자기표현과 정체성의 성장소설
4/5 · 관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주방에 함께 설 수 있을까?
아버지의 방식과 아들의 방식은 여전히 다르다. 문제는 누가 누구를 이기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리듬이 한 공간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로 옮겨간다.
상|아버지와 아들의 요리는 언제 하나의 리듬이 되었을까 | 루카네의 리듬 4/5 · 상 · 아버지와 아들의 요리 성장소설
하|두 사람이 함께 만든 맛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 루카네의 리듬 4/5 · 하 · 가족과 요리를 그린 성장소설
5/5 · 기억 · 완결
떠나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안 앞에 루카네 밖의 시간을 살아볼 기회가 놓인다.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난 뒤에도 자기 리듬은 자기 것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사람에게서 떠나는 일과 그 사람을 잃는 일은 같은 것일까.
상|기억됨은 함께 만든 문장이다 | 루카네의 리듬 5/5 · 상 · 아버지와 아들의 요리 성장소설
하 · 완결|기억됨은 함께 만든 문장이다 | 루카네의 리듬 5/5 · 하 · 아버지와 아들의 요리 성장소설
※ 아래부터는 《루카네의 리듬》 완결까지 읽은 뒤 보기를 권합니다.
《루카네의 리듬》을 끝까지 읽었다면, 이제 처음에는 그냥 지나갔던 장면들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다섯 편을 지나온 하나의 감정선
1편 — 인정받고 싶다
↓
2편 — 사람들의 인정이 오히려 나를 흔든다
↓
3편 — 그래서 내가 나를 선택한다
↓
4편 — 내가 된 뒤에야 아버지와 함께 설 수 있다
↓
5편 — 함께 있어야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안은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다음에는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자기 모습을 확인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만으로는 자기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지나온 뒤에야, 자기 자신인 채 다른 사람과 함께 서는 쪽으로 움직인다.
끝까지 남은 여섯 가지
칼
처음에는 아버지의 방식과 권위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려받은 도구가 되고, 마지막에는 각자의 손에서 서로 다른 박자를 낸다.
카메라
처음에는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다. 이후 남이 보는 나를 확인하고, 다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도구가 된다. 마지막에는 같은 장소에 있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을 잇는다.
트러플
새로움과 유행, 그리고 이안이 처음 자기 방식을 시험해본 출발점이다. 중요한 시작이지만 끝까지 남아야 할 맛은 아니었다.
된장과 파르미지아노
서로 다른 두 재료가 어느 하나를 지우지 않은 채 한 접시 안에 머문다. 두 문화와 두 세대 역시 같아지는 대신 함께 있을 수 있다.
칼질 소리
처음에는 한 사람의 박자였다.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다른 두 박자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지막에도 두 소리는 하나가 되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LUCANE
처음에는 아버지의 가게였다. 한때는 이안이 벗어나고 싶은 이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 한 사람의 소유보다, 함께 살아낸 시간이 남아 있는 장소가 된다.
이 이야기가 태어나기 전의 질문들
1. 배경화면이 다른 세대
《루카네의 리듬》은 처음부터 파스타 가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세대에 관한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부모와 자식은 같은 시간에 함께 살지만, 서로 다른 삶의 ‘배경화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모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걸어왔고, 자식은 이미 현재에 서서 다음 시간을 바라본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낡은 언어를 쉽게 넘어설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가 그 자리까지 오는 동안 얻은 경험과 유산까지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질문을 삶의 장면으로 바꾸었을 때 요리사 아버지와 아들이 등장했다. 아버지의 기술을 그대로 물려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들이 그것을 자기 시대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면서도 아버지를 지우지 않는 관계를 보고 싶었다.
2. 다른 이야기에서 건너온 친구의 시선
또 하나의 씨앗은 별개의 이야기였던 미발행 소설인 《친구가게는 안 갑니다》에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자신의 호의와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미지 속에 편입되면서, 어느 순간 **“내 이름조차, 내가 아닌 것 같았다”**고 느끼는 인물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큰 목소리나 화려한 표현 없이도 같은 자리에 남아주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있었다.
이 감정이 루카네의 주방으로 건너오면서 리오와 SNS, 친구의 시선, 그리고 ‘남이 만든 나’라는 문제가 생겨났다. 아버지에게서 자기 이름을 찾으려던 이야기가 친구와 세상의 시선 속에서도 자기 이름을 지켜야 하는 이야기로 넓어졌다.
3. 마지막에 들어온 ‘기억됨’
그리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 가지 질문이 더해졌다.
‘기억됨’이라는 보이지 않는 철학이 이 이야기 안에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질까.
여기서 기억은 단순히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 손의 움직임과 오래된 습관, 함께 보낸 시간이 다른 사람 안에 남아 다시 살아나는 일이었다.
그 질문이 들어온 뒤 《루카네의 리듬》은 단순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에서 조금 더 멀리 걸어갔다.
갈등에서 자기 이름으로.
자기 이름에서 관계로.
관계에서 독립으로.
그리고 독립한 뒤에도 서로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왜 ‘기억’을 많이 말하지 않았는가
《루카네의 리듬》을 다듬으면서 세운 원칙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었다.
기억을 말하지 말고, 기억되는 장면을 만든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냄새와 손, 칼과 오래된 간판, 촬영된 영상과 삼각대, 주방 타일과 말없이 건네는 접시가 그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에 ‘기억됨’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 독자가 먼저 몇 개의 장면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기를 바랐다.
이 이야기를 다 읽은 뒤 남았으면 했던 것도 철학의 정의는 아니었다.
토마토를 자르는 아버지.
작은 트러플 오일 병.
손에 익어가는 낡은 칼.
카메라 앞에 처음 자기 얼굴을 넣는 소년.
된장과 파르미지아노가 놓인 한 접시.
구도가 엉망인 아버지의 영상.
그리고 문을 열고 돌아온 아들을 향한 짧은 한마디.
“왔냐.”
그 장면들이 남는다면, 이 이야기는 이미 자신이 하려던 말을 한 셈이다.
기억됨은 함께 만든 문장이다.
Savor Balance · Korean Archive · Yoha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