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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감성 SF 철학소설

중고 시니어 휴머노이드|01화 사람의 경력, 기계의 데이터

중고 시니어 휴머노이드

제1회 — 사람의 경력, 기계의 데이터

In a modest Korean rental room at dusk, 64-year-old Yoon Jaeho compares his 33-year employment record with an auction listing for a damaged secondhand humanoid, S-62B. Two laptop screens illuminate his weathered face as his hand rests near the auction controls, capturing the contrast between undervalued human experience and valuable machine data in Episode 1 of the Korean film novel Used Senior Humanoid.

33년의 경력

“경력은 충분하십니다.”

윤재호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살며시 웃었다. 면접에서 ‘충분하다’는 말은 대개 그 뒤에 좋지 않은 문장이 붙었다. 면접관은 예상대로 화면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현장 평가도 좋습니다. 특히 예외 상황 처리 점수가 높으시네요.”

“그건 좀 자신 있습니다.”

재호가 말했다.

 

“주소가 틀린 집도 찾아갔고, 받는 사람이 없는 물건도 주인을 찾아줬고, 비 오는 날 차가 골목에 처박히면 꺼내기도 했습니다. 기계가 못 찾는 건 제가 잘 찾았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두 면접관 가운데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에는 재호의 경력이 떠 있었다.

 

배송 기사 18년.

분류반장 9년.

현장 조장 6년.

총 33년.

그 아래에는 지난 계약직 기간의 실적이 붙어 있었다.

 

오배송 회수율.

고객 분쟁 현장 종결률.

자동 배송망 예외 개입 성공률.

사고 예방 보고 건수.

 

대부분 초록색이었다. 재호는 그것들을 바라보다 등을 조금 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지난 열한 달 동안 그는 면접을 열세 번 봤다. 처음 몇 번은 정장을 입었다. 그다음부터는 넥타이를 풀었다. 여덟 번째부터는 새 구두를 신지 않았다. 열 번째가 지나자 면접 전날 머리를 자르는 일도 그만뒀다.

 

그래도 오늘은 달랐다.

생활물류 예외처리직.

 

자율 배송망이 놓친 것들을 마지막에 사람이 처리하는 자리였다. 재호가 평생 해온 일이었다. 기계를 이기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기계가 못 한 일을 사람이 조금 이어서 하면 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면접관이 화면을 옆으로 넘겼다.

초록색이 사라졌다.

노란색과 붉은색 막대가 나타났다.

 

예상 근속 안정성.

고령 인력 보험 책임등급.

법정 휴게 보정시간.

야간 연속배치 제한.

업무 중 건강 이상 발생 시 사업자 책임 추정치.

 

재호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

면접관이 말했다.

“문제는 업무 성과 쪽이 아닙니다.”

“예.”

 

“회사에서 올해부터 고용 지속비용을 좀 더 엄격하게 보고 있습니다.”

재호가 다시 웃었다.

“지속비용이요?”

 

“예상 근속기간과 보험료, 휴게 대체인력 비용 같은 것을 통합해서 계산합니다.”

“사람을 쓰면 사람 대신 쉴 사람까지 계산하는 겁니까?”

젊은 면접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안전 운영비라고 보시면—”

“좋은 말이네요.”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쉬게 해주는 돈이 아니라, 쉬는 사람 때문에 드는 돈.”

두 면접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호는 자기 말이 조금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는 한마디를 더 했다. 분위기를 풀려고.

“농담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화면 맨 아래에 최종 판정이 떠 있었다.

직무 수행 적합: 양호

그 아래.

 

고용 지속 적합: 기준 미달

둘을 한참 바라보던 재호가 물었다.

 

“그러니까 일은 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 쓰기에는 비싸다는 거네요?”

“그렇게 단순하게—”

“단순한 게 좋습니다.”

 

재호가 서류를 가지런히 모았다. 종이의 모서리를 탁탁 맞췄다. 종이 모서리가 손끝에서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재호는 그 소리에만 잠깐 집중했다. 면접관 앞에서는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을 보신다더니 보험료를 보셨군요.”

나이 든 면접관이 입술을 한번 다물었다.

“윤 선생님, 이의 신청은 가능합니다.”

재호의 손이 멈췄다.

“이의 신청이요?”

 

“과거 실적과 건강 상태를 추가 제출하시면 자동 평가를 다시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결과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얼마나요?”

 

“보통 육 주에서 여덟 주 정도입니다.”

재호는 다시 종이 모서리를 맞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동안 월세도 이의 신청이 되면 좋겠네요.”

이번에는 젊은 면접관이 웃을 뻔했다. 그러다 웃지 않았다. 재호가 먼저 웃었다.

 

“농담입니다.”

그는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문을 열기 직전, 뒤에서 면접관이 말했다.

“이의 신청 안내는 오늘 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재호는 돌아보지 않고 손만 들었다.

“예.”

 

복도에 나오자 면접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재호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벽면 광고판에서 신형 물류 휴머노이드가 상자를 들고 걸어갔다. 화면에서 흘러나온 빛이 재호의 구두 앞까지 닿았다.

 

24시간 작업 대응.

예측 가능한 유지비.

휴게 인력 불필요.

광고 속 휴머노이드는 웃지 않았다. 재호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좋겠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너는 쉬어도 비용이 아니어서.”

 

재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복도 끝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광고 속 휴머노이드는 계속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열네 번째였다.

 

장기임대실 문을 열자 센서등이 두 번 깜빡이고 켜졌다.

 

재호는 구두를 벗어 벽 쪽에 밀어놓았다. 침대 하나와 작은 책상, 옷장, 전기포트. 창밖에는 철거를 기다리는 오래된 옥상들이 이어졌다. 맞은편 담에는 재개발 예정 구역이라는 붉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책상 단말에는 미국에서 딸이 보내온 사진이 떠 있었다. 옷의 소매와 종이 패턴. 재호가 사진을 확대하자 소매 끝의 작은 표시들까지 보였다.

 

딸은 짧은 안부를 덧붙여 놓았다.

재호는 답장 칸을 열었다.

빈칸에서 커서만 깜빡였다.

그는 아무 말도 쓰지 않고 답장 칸을 닫았다.

사진은 화면 한쪽에 남겨두었다.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책상 앞에 앉자 면접 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지원자 윤재호

최종 결과: 채용 부적합

 

상세 사유는 면접장에서 본 것과 같았다. 경력과 성과가 아니라 앞으로의 근속과 휴게, 보험에 드는 비용이었다.

 

“서른세 해는 경력이고 앞으로 몇 해는 비용이냐.”

재호는 이력서를 열었다.

33년.

 

스물일곱에 배송차를 처음 몰았다. 주소가 없어도 사람 이름 하나로 집을 찾아갔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셔터를 올렸고, 배송 불가로 돌아온 물건 앞에서는 전화 한 통을 더 걸었다. 기계가 놓친 예외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해온 사람이 이제 기준 밖에 있었다.

이력서를 닫으려는데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3년분의 데이터

중고 자율노동자산 특별경매

현장 예외 대응 데이터 보유 개체

재호는 광고를 열었다. 폐업한 물류 창고에서 나온 운반형과 분류형, 순찰형과 낡은 생활보조형이 줄지어 나타났다. 팔이 없거나 외장이 깨진 것들도 있었다.

 

“사람 중고시장도 열지 그러냐.”

스크롤을 내리던 손이 멈췄다.

 

S-62B

오래된 생활·운구 보조 계열 자산.

외장은 파손. 몸체 일부 사용 불가.

그런데 설명란에는 굵은 글씨가 있었다.

풍부한 현장 데이터

 

장기간 물류 보조, 비정형 주소 보정, 장애물 우회, 고객 요청 예외 처리. 운용·이전 데이터를 합산한 예외 대응 축적량은 33년분.

재호는 자기 이력서와 경매 화면을 나란히 열었다.

현장 경력 33년.

예외 대응 데이터 33년분.

 

그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책상 위 두 화면에는 똑같은 숫자가 놓여 있었다.

“비정형 상황에 대한 장기 누적 데이터로 현장 적응성이 우수함.”

자기 이력서에는 다른 문장이 있었다.

고령에 따른 장기근속 기대치 제한.

재호가 웃었다.

 

“야.”

“너는 오래돼서 비싸고, 나는 오래돼서 비싸구나.”

그는 자기 이력서에 손가락을 올렸다.

“윤재호. 구형 모델.”

“현장 적응 데이터 풍부.”

“부품 단종 임박.”

 

웃음이 거기서 멎었다.

33년. 33년.

한쪽에서는 살아온 시간이고, 다른 쪽에서는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기록이었다.

 

지난 열한 달 동안 면접장 로비마다 신형 휴머노이드가 있었다. 물건을 옮기고, 안내하고, 사람들이 피하려는 밤을 대신 서던 기계들. 재호는 그것들이 부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미웠다.

 

그런데 S-62B는 새것도 아니었다. 왼쪽 다리는 재사용 불가였고, 외장은 깨져 있었다. 그래도 기록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경매에 나왔다.

“몸이 망가져도 경력은 쳐주네.”

재호는 사진을 확대했다. 몸체와 따로 놓인 작은 검은 부품이 보였다. 그 부품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읽지 않았다. 오늘은 ‘33년분’이라는 말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해가 지자 창밖 옥상들의 윤곽이 유리창에 희미해졌다. 재호는 불을 켜지 않았다.

단말에서 알림이 왔다.

 

기다릴 수 없는 시간

채용 결과 이의 신청 안내

추가 건강평가·치료이력·야간 적응검사. 예상 처리기간 6~8주. 화면 맨 아래에는 파란 버튼이 있었다.

 

이의 신청

재호는 버튼 위에 손을 얹었다. 심사를 다시 받아볼 수 있었다. 자기 이름으로. 여섯 주, 길면 여덟 주 뒤에.

책상 한편에는 이번 달 납부 예정표가 있었다. 장기임대실 사용료, 아내 치료비에서 남은 채무, 통신료와 생활비.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에게 보태던 몫도 있었다.

 

그는 계산기를 열지 않았다. 부족한 금액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화면을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그럼 뭘 더 증명하라는 거야.”

 

이의 신청 창을 뒤로 보내자 S-62B 경매 화면이 나타났다. 남은 시간과 입찰가, 등록·이전·운용 인증 안내가 줄지어 있었다. 가격은 그가 가진 돈보다 많았다.

 

재호는 새 창을 열었다.

긴급 생활안정 대출

담보 항목을 내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장기임대 보증금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복지 상담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방을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도움을 청해야 했다.

재호의 시선이 화면 한쪽에 남겨둔 딸의 사진으로 갔다. 답장은 여전히 쓰지 못했다.

재호는 담보 항목에 체크했다.

 

상환 불이행 시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에 우선 변제권이 설정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고문을 끝까지 읽었다. 모르는 척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확인.

본인 인증 화면에 이름이 떴다.

윤재호

그 이름으로 인증했다.

긴급 대출 심사 접수 완료

 

단말이 짧게 진동했다. 뒤에 숨어 있던 이의 신청 창이 왼쪽에 떠올랐다.

재호는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모서리까지 닿은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이의 신청 창을 닫으려 하자 확인창이 떴다.

 

작성 중인 신청 내용이 저장되지 않습니다.

재호는 한 번 더 닫기를 눌렀다.

방 안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두 개의 판정

이제 화면에는 S-62B만 남았다. 경매 사이트 아래쪽에 버튼 하나가 있었다.

경매 참여

재호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화면 한쪽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용 결과 알림이 작게 남아 있었다.

 

윤재호 — 채용 부적합

그리고 바로 옆에서 다른 문장이 빛나고 있었다.

 

S-62B — 풍부한 현장 데이터

재호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만, 경매 참여 버튼 위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