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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일반소설

기억됨은 함께 만든 문장이다 | 루카네의 리듬 5/5 · 상 · 아버지와 아들의 요리 성장소설

Vertical cover image for Lucane’s Rhythm 5/5 · Part 1. In the warmly lit Lucane pasta shop at dusk, a teenage boy in a dark apron carefully packs an old chef’s knife into a worn leather sheath beside his travel bag, while the “LUCANE PASTA” sign hangs by the window. Korean text presents the series as a father-and-son coming-of-age story and includes the lines, “Leaving, too, was something he learned from the place they built together” and “How could it be the same without you?”

기억됨은 함께 만든 문장이다

《루카네의 리듬》 5/5 · 상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었다. 여섯 개 테이블 가운데 네 개가 차 있었다. 창가에는 처음 보는 손님 두 명이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한쪽 테이블에서는 접시가 거의 비워져 있었다.

 

주방에서는 두 개의 칼이 움직였다.
탁, 탁탁.
탁탁, 탁.

 

루카는 파슬리를 다지고 있었고, 이안은 감자를 얇게 썰고 있었다.

 

“두 번째 테이블, 소스 먼저.”
“알아요.”

 

이안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감자를 정리한 뒤 팬으로 손을 옮겼다. 루카가 접시 하나를 작업대 끝으로 밀었다. 이안은 감자 크림을 올렸다. 된장을 푼 소스를 얇게 두르고 파르미지아노를 조금 갈았다.

 

루카가 접시를 한번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접시를 밀었다. 이안도 아무 말 없이 두 번째 접시를 잡았다.

 

탁탁.
탁.

 

칼 소리는 여전히 달랐다.

 

홀에서 어머니가 주문표 하나를 더 꽂았다.

 

“알리오 하나.”
“제가 할게요.”

 

루카는 이미 다른 팬을 잡고 있었다.

 

“해.”

 

치익.
팬에서 마늘 향이 올라왔다.

 

영업이 끝나갈 무렵 이안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주문표를 정리하던 이안이 화면을 봤다. 지역 음식 웹진에서 온 알림이었다. 며칠 전 루카네에 왔던 기자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이안은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행주에 닦고 링크를 열었다.

 

두 문화가 만나는 뉴저지의 작은 파스타집
― ‘루카네의 아들’ 이안이 만드는 새로운 요리

 

이안은 제목을 한 번 읽었다. 다시 읽었다. 아래에는 주방에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팬에서 올라오는 김 때문에 얼굴 한쪽이 흐렸고, 뒤쪽에는 루카의 어깨가 조금 보였다.

 

“아빠.”

 

루카가 설거지통에 접시를 넣다가 돌아봤다. 이안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루카는 화면을 받아 들었다. 한동안 보고 있었다.

 

“사진은 잘 나왔네.”
“기사도 읽어봐요.”

 

루카가 화면을 아래로 조금 내렸다.

 

“길다.”
“그 정도도 못 읽어요?”

 

루카는 휴대폰을 돌려줬다.

 

“설거지해야 돼.”

 

이안이 피식 웃었다.

 

기사에는 자신의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 처음 트러플 파스타를 만들었던 일. 아버지와 함께 만든 감자와 된장, 파르미지아노의 메뉴.

 

우리라는 맛.

 

좋은 기사였다. 이안도 그렇게 생각했다. 화면을 닫으려다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루카네의 아들’ 이안.

 

이안은 잠깐 화면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밤 가게 불이 모두 꺼진 뒤였다. 이안은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물을 마시러 다시 내려왔다.

 

어두운 홀 한가운데에 작은 불빛이 떠 있었다.

 

루카였다.

 

카운터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안은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조금 전 그 기사였다. 루카는 화면을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이안이 한 계단 더 내려오자 루카가 고개를 들었다. 화면이 꺼졌다.

 

“안 자냐?”
“물 마시려고요.”
“자라.”

 

루카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안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 이안에게 이메일 한 통이 왔다. 뉴욕 북부의 한 요리학교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단기 프로그램이었다. 지역의 작은 식당과 푸드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기사들을 보다가 이안의 이야기를 읽었다고 했다.

 

석 달.

 

여름방학 대부분을 보내는 과정이었다. 학교 주방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요리하고, 주변 식당 몇 곳에서 실습하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안은 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한 번 더 읽었다. 화면 아래에는 답장 버튼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루카네 간판이 보였다.

 

LUCANE

 

오른쪽 모서리의 벗겨진 자리는 그대로였다. 그 아래에서 루카가 식재료 상자를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안은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답장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날은.

 

며칠 뒤 저녁 영업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리오가 들어왔다. 혼자였다.

 

이안은 빈 테이블에서 물잔을 치우다 고개를 들었다. 리오는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아직 해?”
“응.”

 

리오는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펼쳤다. 예전 같으면 가게 안부터 둘러봤을 것이다. 손님이 몇 명인지, 뭐가 달라졌는지, 사람들이 아직도 영상을 보는지.

 

그날은 메뉴판만 봤다.

 

이안은 카운터 안쪽에서 기다렸다. 잠시 뒤 리오가 물었다.

 

“뭐 먹어야 돼?”
“트러플?”

 

거의 습관처럼 나온 말이었다.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메뉴판을 조금 더 보더니 덮었다.

 

“네가 제일 잘하는 거.”

 

이안은 리오를 바라봤다. 리오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알았어.”

 

이안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감자를 꺼냈다. 루카가 마늘을 손질하다 물었다.

 

“뭐 나갔어?”
“그거요.”

 

이안이 된장 통을 열었다. 루카는 홀 쪽을 한번 봤다. 리오를 알아본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이 팬을 잡았다. 루카가 접시를 꺼냈다.

 

감자 크림.
된장 소스.
마지막에 파르미지아노.

 

접시가 완성됐다.

 

이안이 직접 가져다주었다. 리오는 한입 먹었다. 말이 없었다.

 

두 번째 입.

 

이안은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홀을 보지 않았다.

 

잠시 뒤 계산대 앞에 리오가 서 있었다. 접시는 거의 비어 있었다. 리오가 카드를 내밀었다.

 

“괜찮네.”

 

이안이 카드를 받았다.

 

“그게 끝이야?”

 

리오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또 뭘 원하는데?”

 

이안도 웃었다.

 

“없어.”
“그럼 됐네.”

 

결제를 마쳤다. 리오는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었다.

 

“간다.”
“어.”

 

종이 울렸다. 문이 닫혔다.

 

이안은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루카가 말했다.

 

“거기 놔.”

 

이안은 접시를 싱크대에 놓았다.

 

그날 밤 이안은 방으로 올라가 휴대폰을 열었다. 며칠 동안 그대로 두었던 이메일이었다.

 

답장 버튼을 눌렀다.

 

잠깐 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적었다.

 

참여하고 싶습니다.

 

몇 초 뒤 전송했다. 메일은 바로 사라졌다. 이안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며칠 뒤 최종 안내가 왔다. 출발 날짜도 정해졌다.

 

영업이 끝난 밤, 루카는 밖에서 간판 불을 끄고 있었다.

 

딸깍.

 

LUCANE이라는 글자가 어두워졌다. 이안이 문에 기대어 있었다.

 

“아빠.”
“왜.”
“그 프로그램 있잖아요.”

 

루카가 문을 잠갔다.

 

“응.”
“갈게요.”

 

열쇠를 돌리던 손이 잠깐 멈췄다.

 

루카가 물었다.

 

“언제 가는데?”
“다음 달 첫째 주예요.”
“석 달?”
“네.”

 

루카는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둘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안은 의자를 하나씩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한 개.
두 개.

 

마지막 의자를 들다가 말했다.

 

“제가 없으면 가게가 좀 다를 것 같아요.”

 

루카가 걸레를 짜던 손을 멈췄다.

 

“당연하지.”

 

이안이 아버지를 봤다.

 

“당연해요?”
“네가 없는데 어떻게 같냐.”

 

루카는 다시 테이블을 닦았다. 이안은 마지막 의자를 뒤집어 올렸다.

 

출발 전날, 이안은 침대 위에 여행가방을 펼쳐놓았다.

 

옷보다 먼저 넣은 것은 칼이었다.

 

루카가 오래전 처음 요리를 배울 때 사용했다던 칼. 처음 받았을 때는 손잡이가 두껍고 무거웠다. 지금은 칼을 잡으면 손가락이 먼저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전까지 이안이 쓰던 칼은 루카네 주방 서랍에 그대로 두고 왔다.

 

이안이 오래된 칼을 천에 싸려는데 방문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가져가면 안 돼.”

 

루카가 들어왔다. 손에는 낡은 가죽 칼집이 들려 있었다.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이거 아빠 거 아니에요?”
“칼도 내 거였지.”

 

이안이 칼집을 들어봤다. 가죽 한쪽이 오래 닳아 있었다. 루카는 이미 문 쪽으로 돌아섰다.

 

“아빠.”
“왜.”
“고마워요.”

 

루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잃어버리지 마.”

 

이안은 웃으며 칼을 칼집에 넣었다. 카메라와 접이식 삼각대도 가방 한쪽에 넣었다. 노트북을 넣었다. 지퍼를 닫았다.

 

다음 날 차가 출발했다.

 

이안은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봤다. 루카네가 뒤로 멀어졌다.

 

LUCANE.

 

모서리가 벗겨진 간판이 점점 작아졌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움직였다.
간판이 건물 뒤로 사라졌다.

Savor Balance · Korean Archive · Yoha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