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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 인문 에세이/철학 에세이

신윤주의 가정음악에서 들은 〈Both Sides, Now〉|작가는 멀리 있지 않다

An early autumn morning at a European-style outdoor café, with a cup of coffee, a glass of white wine, a folded newspaper, an open notebook and pen on the table, evoking music, reflection, and the quiet moment when anyone can become a writer.

음악 한 곡이 데려간 10월 아침

10월 아침, 라디오에서 트럼펫 선율이 흘러나왔다. KBS Classic FM 『신윤주의 가정음악』을 듣고 있던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호칸 하르덴베리에르(Håkan Hardenberger)가 연주하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Both Sides, Now〉였다.

길고 아련한 트럼펫의 호흡이 서늘해진 아침 공기 위로 천천히 번지고, 그 뒤를 받치는 현악의 잔잔한 울림이 하루를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잠시 그대로 앉아 이 음악을 더 듣고 싶어졌다.

 

그때 오래된 유럽의 어느 카페 거리가 떠올랐다. 파리일 수도 있고 빈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보았던 어느 한 장소도 아니다. 초가을 아침, 길가에 내놓은 작은 의자와 둥근 테이블, 펼쳐 둔 신문 한 장과 종이, 펜, 그리고 김이 오르는 커피 한 잔. 조금 늦은 아침이라면 차갑게 식힌 화이트 와인 한 잔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떤 작가나 철학자가 신문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거리를 바라보고, 지나가는 사람과 흔들리는 나뭇잎을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종이에 몇 자를 적는 풍경. 역사 속 누구의 정확한 아침이라기보다 음악이 내 안에 만들어 낸 장면이었다.

 

생각은 거기에서 작가라는 사람에게로 갔다. 우리는 흔히 작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문장을 만들 줄 알고, 다른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것을 책이나 작품으로 남기는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신과 작가 사이에 꽤 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작가의 감각도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일까.

 

청소년기 어느 날, 학교에 온 교생 선생님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을 굳이 첫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평소와 똑같던 복도와 교실이 그 사람 때문에 조금 다르게 보이던 순간은 있었다. 수업이 끝나는 것이 괜히 아쉽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오래 남기도 했다. 사랑하면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말을 나는 그런 뜻으로도 이해해 본다. 사랑이 없던 감성을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안에 있었지만 평소에는 잠들어 있던 감각을 잠시 깨우는 것이라고.

 

그런 순간에는 평범한 나무가 갑자기 아름답고, 늘 걷던 길이 기억해 두고 싶은 길이 된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한마디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고,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문장이 마음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한 번쯤 시인의 자리 가까이에 가보았던 것 아닐까. 다만 대부분은 그 문장을 기록하지 않는다. 생각이 지나가고 하루가 지나가면서, 그때 찾아왔던 문장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특별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 전에, 사라질 뻔한 생각을 붙잡아 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떠오른 문장을 종이에 적고, 화면에 남기고, 누군가 다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시화한 사람. 그렇다면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 사이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높은 벽이 없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작가적인 순간은 찾아오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흘려보내고 어떤 사람은 몇 글자라도 남겼을 뿐인지도 모른다.

 

오늘 음악을 듣다 보니 예전에 들었던 트롬본 연주 하나도 떠올랐다. 제목은 〈Seoul Forest〉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주자의 이름은 이제 선명하지 않지만, 경쾌한 트롬본 소리를 들으며 서울숲의 어느 가을 아침과 살랑이는 바람, 일찍 문을 연 카페를 떠올렸던 기억은 남아 있다. 그때는 이런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아침에 어울리는 와인 한 잔을 추천해 드릴까요?” 레드 와인은 조금 무거울 것 같고, 차갑게 식힌 화이트 와인 한 잔. 아니면 아무것도 넣지 않은 커피 한 잔.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와인도 커피도 아니었다. 잠시 앉아서 계절이 도착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종종 장소를 만든다. 어떤 음악은 비 오는 밤이 되고, 어떤 음악은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을 데려온다. 또 어떤 음악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거리의 냄새와 온도까지 만들어낸다. 그리고 10월의 이 아침, 〈Both Sides, Now〉는 나를 한적한 카페의 바깥 의자로 데려갔다. 신문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놓여 있고, 커피에서는 아직 김이 올라오는 자리. 그곳에서 나는 ‘작가’라는 이름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오늘 아침에는 굳이 좋은 글을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겠다. 문을 일찍 여는 카페가 있다면 바깥 의자에 잠깐 앉아도 좋겠다. 노트북까지 가져갈 필요는 없다. 작은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면 충분하다. 아무 문장도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가을이 오는 것을 한번 바라보면 된다.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는 없던 한 문장이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게 두지 말고 적어 두면 된다.

 

작가는 멀리 있지 않다.

 

어떤 아침에는 누구나 잠시 작가가 된다.

 

Savor Balance · Korean Archive · Yoha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