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EP 음식좌표 | AEP · AI Entity Profiler
정통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나폴리 피자와 음식의 정통성 | 5 / 7
깊은만족의 Savor Balance
식문화 좌표 시리즈
어느 날이었다.
나는 화덕피자를 먹고 있었다. 피자는 맛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생겼다.
토핑으로 올라간 채소가 한 번에 끊어지지 않았다. 한 조각을 집어 들자 채소 전체가 따라 올라왔고, 옆 조각도 함께 움직였다.
결국 가위를 찾게 되었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위로 자르면 된다. 몇 초 걸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왜였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불편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추가 작업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더 정확하게는,
좋은 식사는 어디까지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일까.
여기서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내가 겪은 이 장면이 모든 화덕피자의 특징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정한 날, 내가 먹었던 한 피자에서 생긴 작은 불편이 오히려 ‘먹는 과정’이라는 더 큰 질문을 남겼다는 뜻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음식을 맛으로 평가한다. 맛은 중요하다.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음식은 맛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은 실제로 먹는 과정 속에서 존재한다. 집고, 나누고, 입으로 가져가고, 씹고, 삼키고, 다음 입으로 이어간다. 마지막에는 식사를 끝낸다.
이 흐름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것을 **‘식사 동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글에서 식사 동선이란 한 음식을 집고, 나누고, 씹고, 삼키고, 다음 입으로 이어가 식사를 끝내기까지 필요한 행동과 도구의 흐름을 뜻한다.
AEP의 관점에서 여기서 보고 싶은 것은 가위라는 도구의 좋고 나쁨이 아니다. 음식과 먹는 사람 사이에서 어디에 마찰이 생기고, 그 마찰이
식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작이 적은가가 아니다.
쌈을 싸 먹을 수도 있다.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소스에 찍어 먹을 수도 있다. 손으로 뜯거나, 칼과 포크를 사용하거나, 여러 사람이 음식을 잘라 나눌 수도 있다. 그런 동작들은 그 자체로 불편함이나 실패가 아니다.
식사 동선의 핵심은 동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의 먹는 방식에 이미 포함된 동작과,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 생긴 동작을 구분하는 것이다.
나폴리의 오래된 거리 음식인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pizza a portafoglio)를 보면 이 차이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피자를 반으로 접고 다시 접어 지갑처럼 만든 뒤 손에 들고 먹는다. Gambero Rosso는 이 형태가 걸으면서도 쉽게 한입 베어 먹을 수 있도록 접어 먹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접었을 때 토마토가 흘러나오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일반적인 피자보다 토핑을 적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주1]
Franz Lidz가 Smithsonian Magazine에서 나폴리의 피자이올로 Gennaro Luciano를 취재한 기록에서도 Luciano는 실제로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를 접어 먹으며, 안쪽에 모인 소스 때문에 옷에서 조금 떨어뜨려 들고 먹는 방법을 설명한다.[주1]
여기에도 여러 동작이 있다. 피자를 접고, 들고, 방향을 잡고, 먹는다.
그러나 그것은 피자의 문제를 고치는 동작이라기보다, 그 피자를 먹는 방식 자체에 포함된 동작이다.
이 차이는 작지만 중요하다.
식사는 언제나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문화마다 손을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고, 칼·포크·숟가락·젓가락을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며, 무엇부터 먹고 어떻게 나누고 언제 식사를 끝내는가도 다르다.
음식인류학자 Mary Douglas는 식사를 무작위로 모인 음식들의 집합이 아니라 순서와 구분을 가진 문화적 구조로 바라보았다.[주2] Margaret Visser 역시 식탁에서 사용하는 손과 도구, 식사 예절과 순서 같은 작은 행동들이 단순한 섭취를 넘어 오랜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폭넓게 살펴본다.[주3]
물론 그들의 연구가 “동작이 적은 음식이 더 좋은 음식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여기서 배우고 싶은 것은 반대에 가깝다.
먹는 행동에도 질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앞선 글 「나폴리 피자는 왜 얇을까」에서 나는 반죽과 발효, 성형과 굽기가 함께 만드는 관계를 ‘균형’이라는 말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균형은 화덕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자가 완성되어 접시 위에 놓인 뒤에도 계속된다.
결국 먹는 사람의 손과 입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완성된 음식의 경험을 살필 때 마지막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먹는 사람은 이 음식을 어떻게 먹게 되는가.
한입을 먹고 다음 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 아니면 계속 멈춰야 하는가.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을 정리해야 하는가. 토핑을 다시 올려놓아야 하는가. 잘리지 않는 것을 다시 잘라야 하는가. 먹는 도중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를 계속 해결해야 하는가.
바로 그 순간,
먹는 행위보다 해결하는 행위가 앞에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처음에는 ‘좋은 식사 동선은 추가 도구가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문제는 도구의 숫자가 아니라, 그 도구가 식사의 흐름 안에서 맡는 역할이다. 어떤 음식은 특정한 도구와 먹는 방법을 필요로 하며, 그것 역시 음식문화의 일부다.
따라서 이 글은 가위를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다.
문제는 가위가 아니라, 왜 그 순간 가위가 필요해졌는가다.
내가 먹던 피자에서는 채소가 한 조각의 경계를 넘어 옆 조각까지 끌고 왔다. 나는 먹기를 잠시 멈추고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그때 가위는 그 식사의 방식에 이미 포함된 동작이라기보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등장했다.
바로 그 차이가 내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나는 여기서 2편에서 말했던 ‘완주성’을 다시 떠올린다.
완주성은 하나의 음식이 다른 메뉴나 추가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한 끼의 시작과 끝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였다. 3편에서는 그것이 먹는 사람에게 남기는 충분함과 끝맺음의 감각을 ‘식사의 질서’라고 불렀다.
4편에서는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피자의 물리적인 조건을 ‘균형’이라는 말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 5편에서는 그 균형이 실제로 사람의 손과 입을 지나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는다.
완주성, 식사의 질서, 물리적인 균형, 그리고 식사 동선.
서로 다른 말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먹는 사람이 한 끼를 끝까지 어떻게 경험하는가.
나는 여기서 정통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정통은 옛날의 모양과 방법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들었는가. 어떻게 나누었는가. 어떻게 입으로 가져갔는가. 어떻게 다음 입으로 이어갔는가.
그리고 어떻게 한 끼를 끝냈는가.
그런 작은 움직임들 역시 음식이 살아온 시간의 일부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전통 음식이 ‘먹기 쉽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식은 복잡한 먹는 방식 자체가 문화이고, 어떤 음식은 함께 손을 움직이고 나누는 과정이 즐거움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함이 아니다.
음식과 먹는 방식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가.
그것이 내가 ‘식사 동선’이라는 말로 보고 싶은 부분이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가위를 찾는 데에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몇 초 동안 나는 잠깐 피자를 먹는 사람에서, 피자를 다시 정리하고 고치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 변화가 내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먹는 법을 가르칠 수는 있다.
그러나 먹는 내내 음식의 문제를 고치게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음식은 아무런 행동도 요구하지 않는 음식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음식의 일부가 되는 음식에 가깝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사람이 계속해서 멈추고, 고치고, 정리해야 한다면 우리는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다.
좋은 식사는 어디까지 자연스러워야 하는가.
좋은 음식은 어디까지 먹는 사람의 움직임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리고 음식의 완성은 주방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그것을 먹는 사람의 마지막 한입까지 이어지는가.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두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전보다 분명해졌다.
좋은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해결책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통이 기억해야 하는 것도 어쩌면 레시피와 재료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그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어떻게 한입에서 다음 한입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끼를 끝냈는지.
그런 작은 움직임 역시 음식이 오랫동안 품어 온 기억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이번 편에서 먹는 사람의 손과 도구를 바라보았다면, 다음 편에서는 만드는 사람의 손과 불로 시선을 옮겨 보려 한다.
우리는 왜 불을 바꾸었을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연료는 정말 레시피일까.
아니면 태도일까.
각주
[주1]
Gambero Rosso의 2023년 기사 「Pizza a Portafoglio: History, Curiosities and How to Properly Eat It」은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를 일반적인 접시 피자보다 작은 형태로 만들어 지갑처럼 접어 먹는 나폴리의 거리 음식으로 설명한다. 접은 상태에서 걸으면서도 쉽게 먹을 수 있으며, 접을 때 토마토가 흘러나오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토핑을 비교적 적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Gambero Rosso International
Franz Lidz의 Smithsonian Magazine 기사 「Inside Naples’ World-Famous Pizza Culture」에는 나폴리 Port’Alba의 6대째 피자이올로 Gennaro Luciano가 피자 아 포르타폴리오를 실제로 접어 먹으며 그 먹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행동이 적을수록 좋은 음식”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형태와 먹는 행동이 서로 연결되어 발전한 실제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Smithsonian Magazine
[주2]
Douglas, Mary. “Deciphering a Meal.” Daedalus 101, no. 1, Winter 1972, pp. 61–81.
Mary Douglas는 식사를 개별 음식이 우연히 모인 것이 아니라 순서와 구분을 갖춘 문화적 구조로 분석한다. 본문의 ‘식사 동선’은 Douglas가 사용한 용어가 아니며, 그의 논문이 “추가 행동이 적은 음식이 더 좋은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본 장은 식사 역시 일정한 구조와 흐름을 가진 문화적 행위라는 배경에서 Douglas의 연구와 대화한다. JSTOR
[주3]
Visser, Margaret. The Rituals of Dinner: The Origins, Evolution, Eccentricities, and Meaning of Table Manners. First American ed. New York: Grove Weidenfeld, 1991.
Margaret Visser는 식사와 식탁 예절의 역사 속에서 손, 칼과 포크를 비롯한 식사 도구, 식사의 순서와 여러 관습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폭넓게 다룬다.
따라서 이 책은 “도구가 적을수록 좋은 음식”이라는 규칙의 근거가 아니라, 먹는 방법과 도구 역시 식문화의 일부라는 배경 자료로 사용한다. 초판 미국판의 서지 정보는 WorldCat에서 확인된다. WorldCat
미주
[미주 1]
본 장은 특정 식당이나 특정 피자를 비판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제목의 “화덕피자는 왜 먹기 불편할까”는 모든 화덕피자가 먹기 불편하다는 일반적 사실을 주장하는 문장이 아니다. 저자가 실제로 먹었던 한 피자에서 경험한 작은 불편을 출발점으로, 음식의 구조와 먹는 행동 사이의 관계를 묻기 위한 질문이다.
가위 역시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음식에서는 가위가 처음부터 식사 방식의 일부일 수 있다. 본 장이 구분하려는 것은 그 음식의 먹는 방식에 포함된 동작과,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된 교정 동작이다.
[미주 2]
‘식사 동선’은 음식학이나 나폴리 피자 전통에서 사용되는 공식 학술·기술 용어가 아니다.
본 시리즈가 음식이 시작부터 끝까지 실제로 먹히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해석 개념이다.
여기에는 음식을 집고, 나누고, 입으로 가져가고, 씹고, 삼키고, 다음 입으로 이어가며 식사를 끝내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가 포함된다.
따라서 식사 동선의 좋고 나쁨을 단순히 행동이나 도구의 숫자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본 장의 관심은 먹는 사람이 그 식사 방식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제 해결을 얼마나 반복적으로 요구받는가에 있다.
[미주 3]
본 장은 전통 음식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를 ‘먹기 쉬움’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음식에서는 복잡한 먹는 방법 자체가 문화적 의미를 갖고, 함께 나누고 손을 움직이는 과정 자체가 식사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글은 맛, 공동체, 역사, 경제성, 재료, 전승 등 전통 음식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음식과 실제 먹는 행동의 관계라는 한 좌표만을 바라본다.
따라서 “좋은 음식은 먹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해결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특정 역사 자료의 직접적인 결론이 아니라, 본 장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철학적 명제다.
참고문헌
Gambero Rosso. “Pizza a Portafoglio: History, Curiosities and How to Properly Eat It.” February 9, 2023. Gambero Rosso International
Lidz, Franz. “Inside Naples’ World-Famous Pizza Culture.” Smithsonian Magazine, March 2021. Smithsonian Magazine
Douglas, Mary. “Deciphering a Meal.” Daedalus 101, no. 1, Winter 1972, pp. 61–81. JSTOR
Visser, Margaret. The Rituals of Dinner: The Origins, Evolution, Eccentricities, and Meaning of Table Manners. First American ed. New York: Grove Weidenfeld, 1991. WorldCat